스카이 스트라이커 제1화 — 헌터
헌터 협회 서울 중부 지부. 오전 9시 12분.
접수 창구 앞에 줄이 늘어서 있었다. 대부분 젊었다. 스무 살 초반, 일부는 더 어렸다. 게이트가 열린 지 3년이 지나면서 헌터 각성은 하나의 진로처럼 자리를 잡았다. 대학 대신 각성 검사. 취업 대신 던전 클리어.
최루아는 줄 맨 뒤에 섰다.
군복은 입지 않았다. 검은 슬랙스에 회색 점퍼. 오른손엔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다. 안에는 두 장의 종이가 있었다. 명예전역증명서. 그리고 헌터 각성 판정서. 둘 다 같은 날짜가 찍혀 있었다.
앞줄의 청년이 뒤를 돌아봤다. 루아와 눈이 마주쳤다가 시선을 피했다. 루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창밖을 봤다. 건너편 건물 옥상에 저격 포인트로 쓸 수 있는 위치가 두 군데 있었다. 왼쪽은 일조각이 불리하고, 오른쪽은 풍압을 고려해야 했다.
직업병이었다. 고치려 한 적은 없었다.
"다음 분."
루아가 창구 앞에 섰다. 담당 직원은 서른 중반쯤 되어 보였다. 안경 너머로 서류를 훑었다. 전역증명서를 먼저 확인하고, 각성 판정서를 봤다. 시선이 한 번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공군 CCT 출신이시네요."
"네."
"각성 등급은 C. 직업군은..." 직원이 잠깐 멈췄다. "저격수."
화면 어딘가를 클릭하는 소리가 났다. 루아는 기다렸다.
"저격수는 좀 비주류긴 하죠." 직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총기 계열은 마나 증폭 효율이 낮아서요. 협회 등록은 가능하지만 초기 의뢰 매칭이 쉽지 않을 수도 있어요. 직업 재판정을 받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C급이시면 아직—"
"등록만 해주시면 됩니다."
직원이 멈췄다.
루아의 목소리엔 감정이 없었다. 화도, 설득의 여지도 없었다. 그냥 진술이었다. 등록만 해달라는. 직원은 더 말하지 않았다. 키보드를 두드렸다. 헌터 등록증이 프린터에서 나왔다.
최루아. 등급 C. 직업군: 저격수.
루아는 카드를 받아 봉투에 넣었다.
어릴 때 루아는 아버지의 얘기를 들으며 잤다.
최정연. 공군 하사관 출신. CCT를 지원했다가 체력 평가 마지막 단계에서 탈락한 사람. 그가 잠들기 전 딸에게 해준 이야기들은 영웅담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내가 못 넘은 담이 있었어."
그 말 한 마디가 루아의 진로를 결정했다.
CCT 선발 과정은 혹독했다. 루아는 여성 지원자 중 소수에 속했다. 탈락률이 90퍼센트를 넘었다. 루아는 통과했다. 아버지에게 전화했을 때 수화기 너머가 한참 조용했다. 아버지는 결국 한 마디만 했다.
"잘했다."
딱 그것뿐이었다.
저격 소질이 드러난 건 하사 시절이었다.
사격 훈련장. 표적 거리 800미터. 바람이 측면에서 불었다. 교관은 이미 기대를 내려놓은 표정이었다. 루아는 호흡을 가다듬지 않았다. 대신 풍압을 읽었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각도. 흙먼지가 이동하는 방향. 머릿속에서 탄도 포물선이 그려졌다.
방아쇠를 당겼다.
탄환이 9환에 박혔다. 중심에서 9밀리미터 벗어났다. 루아는 즉시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았다. 다음 탄을 장전하며 값을 수정했다. 두 번째 탄은 10환이었다.
교관이 말없이 봤다. 한참 후 입을 열었다.
"탄도를 읽는 눈이 다르네."
칭찬이 아니었다. 관찰이었다. 루아는 그게 더 좋았다.
중사로 진급한 뒤 해외 파병 명령이 떨어졌다. UN 평화유지군 임무. 분쟁 지역. 시가지 저격 엄호와 전방 관측이 주 임무였다.
임무 7일차였다.
교전이 벌어졌다. 항공 지원 유도를 맡았던 중위가 엄폐물 밖으로 노출된 순간 저격을 당했다. 즉사였다. 루아는 중위가 들고 있던 레이저 지시기를 빼앗아 들었다. 주변에 유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더 없었다.
루아는 좌표를 전송했다.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군기가 응답했다. 폭격이 들어왔다.
교전이 종료됐다. 작전 보고서에 루아의 이름이 올라갔다. 독자 판단 항공 유도. 아군 피해 없음. 임무 완수.
그날 루아는 깨달았다. 저격이란 단 하나의 결정이다. 정보를 모으고, 계산하고, 때를 기다리다 한 번에 내리는 결정. 총구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전 모든 과정이 이미 저격이었다.
게이트가 처음 열린 건 루아가 상사로 진급한 해였다.
서울 도심에 보랏빛 구멍이 생겼다. 지름 20미터. 그 안에서 나온 것들은 짐승도, 사람도 아니었다. 기존 화기로 잡히긴 했다. 그러나 느렸다. 탄약 소모가 지나치게 컸다. 그리고 게이트는 닫히지 않았다.
CCT는 즉각 게이트 대응 전력으로 재편됐다. 루아가 속한 팀은 경기 북부에서 열린 게이트에 투입됐다.
임무 이틀차. 팀원 중 두 명이 죽었다.
조 하사와 임 중사. 둘 다 루아보다 먼저 CCT에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조 하사는 게이트 안쪽 어둠 속에서 나타난 무언가에게 목을 물렸다. 임 중사는 그를 꺼내려다 같이 끌려갔다. 열두 시간 후 수색대가 찾아낸 건 장비뿐이었다.
루아는 게이트 인근 언덕 위에서 혼자 남아 진입로를 지켰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그게 더 이상했다.
그날 밤 루아는 남은 팀원들의 이탈을 막고, 항공 지원 채널을 직접 열었다. 게이트 내부 밀집 구역에 정밀 폭격을 넣었다. 게이트가 불안정해졌다. 협회 봉쇄팀이 그 틈에 진입해 봉인을 완료했다.
무공훈장이 왔다. 루아는 수여식에 참석했다. 표정이 없었다.
며칠 후 각성 검사 결과가 나왔다. C급. 직업군: 저격수.
상관이 불렀다.
"최 상사. 군 소속 헌터로 운용하겠다. 특수 임무팀에 배속—"
"전역하겠습니다."
상관이 굳었다.
"이유가 뭔가."
루아는 잠깐 생각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군 체계 안에서 내릴 수 없는 판단이 있습니다. 앞으로 그런 순간이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헌터 협회 중부 지부. 오전 9시 47분.
등록증을 챙겨 나오던 루아의 핸드폰에 알림이 울렸다. 협회 앱. 신규 등록 헌터 대상 초기 의뢰 목록이었다.
대부분 D급이었다. 게이트 입구 경비, 사체 처리 보조. 루아는 스크롤을 내렸다.
C급 솔로 의뢰가 하나 있었다.
경기 광주. 발생 48시간 경과 C급 게이트. 미클리어. 단독 진입 가능. 보수 380만 원.
다른 헌터들이 기피하는 의뢰였다. 단독 진입이 가능하다는 건 달리 말하면 아무도 같이 가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발생 48시간이 지난 게이트는 내부 몬스터 밀도가 높아진다. 위험 수당이 붙은 금액이었다.
루아는 의뢰를 수락했다.
경기 광주 외곽. 오후 1시 55분.
게이트는 논밭 한가운데 있었다. 반경 50미터에 노란 경계 테이프가 쳐져 있었고, 협회 직원 두 명이 초소에 앉아 있었다. 직원 중 한 명이 루아를 보고 일어났다.
"솔로 의뢰자시죠? 최루아 헌터님?"
"네."
"C급이긴 한데, 이미 이틀이 지나서요. 개체 수가 꽤 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파티로 들어가시는 게..." 직원이 루아의 장비를 훑었다. "혹시 무기는—"
루아는 차 트렁크에서 케이스를 꺼냈다. 길이 120센티미터. 무게 6.5킬로그램. 잠금장치를 열었다.
내부에 볼트 액션 저격총이 누워 있었다. 군에서 개인 불출 허가를 받아 나온 물건이었다. 총열 표면에 미세한 각인이 새겨져 있었다. 에테르 크리스탈 박막 코팅. 직원 눈에는 보이지 않는 수준이었다.
직원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루아는 볼트를 한 번 당겼다 밀었다. 노리쇠가 걸리는 감촉을 확인했다. 탄약 파우치에서 탄환 다섯 발을 꺼내 손가락으로 하나씩 훑었다. TYPE-01. 에테르 침투탄. 탄두 표면의 크리스탈 코팅이 맞닿는 손끝에서 미세하게 차가웠다.
세 발을 탄창에 밀어 넣고 두 발은 파우치에 남겼다.
다섯 발이면 충분하다. 아니라면 계산이 잘못된 것이다. 계산이 잘못됐다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된다.
루아는 게이트 앞에 섰다.
바람이 남서쪽에서 불어왔다. 초속 2미터. 습도 낮음. 게이트 내부에서 특유의 마나 냄새가 흘러나왔다. 썩은 구리 냄새와 비슷했다. 루아는 코로 한 번 들이쉬고 내뱉었다.
마나 밀도 높음. 가시거리 제한 가능성 있음. 첫 교전은 50미터 이내로 좁힐 것.
한 발씩이다.
루아는 게이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루아는 게이트에서 나오는 길에 잠깐 뒤를 돌아봤다. 게이트 입구가 닫히고 있었다. 클리어가 확인된 게이트는 협회에서 폐쇄 처리를 했다. 루아가 처음으로 혼자 클리어한 게이트였다. C급이었지만 루아에게는 중요했다. 처음이라는 건 언제나 기억에 남았다.
보고서를 제출하고 협회를 나왔다. 의뢰 결과가 시스템에 올라갔다. 총 소모 탄수 사 발. 소요 시간 오십이 분. 루아는 수치를 확인하고 노트에 기록했다. 첫 솔로 의뢰 결과.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만족스럽지도 않았다. 탄수가 더 줄어야 했다. 시간도 더 줄어야 했다. 루아의 기준은 항상 자기 자신이었다. 어제보다 오늘이 나으면 됐다.
저녁에 에테르 탄도학 노트를 폈다. 오늘 게이트에서 관측한 마나 흐름 데이터를 정리했다. C급 개체의 마나 코어 위치 분포. 방어막 두께와 관통 탄속의 관계. 아직 가설 수준이었지만 조금씩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루아는 이 노트가 언제 완성될지 몰랐다. 그래도 계속 쓸 것이었다. 기록하지 않으면 잊혔다. 잊히면 이론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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