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스트라이커 제19화 — 탄도 노트
일주일치 데이터를 한꺼번에 정리하기로 한 것은 화요일 오후였다. 루아는 테이블에 노트 두 권과 출력 자료들을 펼쳐놓았다. 평지형부터 산악형까지 네 유형의 데이터가 섞여 있었다. 정리가 필요했다.
루아는 항목별로 나눠서 접근했다. 먼저 공통 원칙을 찾았다. 네 유형 모두에서 반복되는 패턴이 있었다. 마나 코어 위치는 개체의 에너지 소비 중심을 따른다는 것이었다. 정지 상태에서는 신체 중앙에 가깝고, 이동 중에는 이동 방향 쪽 에너지 소비 부위로 이동했다.
이 패턴이 일정하다면 시각적으로 코어를 찾지 않아도 됐다. 개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면 코어가 어디 있는지 추정할 수 있었다. 달리는 개체는 하지 중심. 날아가는 개체는 날개 추진 부위. 수중 고속 이동은 두부 방향. 루아는 이 원칙을 노트 첫 장에 큰 글씨로 썼다.
원칙 하나. 마나 코어는 에너지 소비 중심을 따른다.
다음은 탄도 보정이었다. 유형별로 비교했다. 평지형은 기준값이었다. 시야 열림, 지형 장애물 없음, 표준 조건이었다. 삼림형은 시야가 제한됐다. 발사 거리가 줄고 방해물 회피가 필요했다. 단거리 정밀 사격이 핵심이었다.
수계형은 수직 차원이 추가됐다. 도약 예측이 필요하고, 수면 굴절 보정이 요구됐다. 이 두 요소가 평지형 대비 복잡도를 높였다. 산악형은 고각 보정과 바람 영향이 지배적이었다. 고도가 높을수록 변수가 많아졌다.
원칙 둘. 사격 보정 우선순위는 거리, 고도 차, 환경 매질, 개체 이동 예측 순이다.
루아는 각 원칙 아래에 수치 예시를 달았다. 추상적인 원칙은 실전에서 쓸 수 없었다. 거리 이십 미터, 고도 차 없음, 개체 정지라면 보정값 제로. 거리 이십 미터, 고도 차 이백 미터, 개체 비행 중이라면 고각 사십팔 도, 바람 보정 추가. 이런 식으로 수치를 대입해가며 원칙을 구체화했다.
원칙 셋. 모든 보정값은 반드시 실측으로 검증한다.
오후 늦게 전화가 왔다. 강도윤이었다. 루아와 같은 신인 헌터였다. 훈련원 수료 후 협회 게시판에서 루아 이름을 봤다고 했다. C급 솔로 클리어 기록이 눈에 띄었다고.
루아는 전화를 받으면서 노트 정리를 계속했다. 강도윤이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다. 루아는 의뢰 다니고 있다고 했다. 강도윤은 자신도 의뢰를 다니고 있지만 대부분 파티로 가고 있다고 했다. 혼자 하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루아가 말했다. 힘들지 않습니다. 지금은 혼자가 맞습니다. 강도윤이 왜냐고 물었다. 루아가 말했다. 데이터 수집 목적이라서요. 파티로 가면 내가 원하는 상황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강도윤이 잠깐 침묵했다. 무슨 데이터냐고 물었다.
루아가 말했다. 게이트 유형별 사격 패턴 분석입니다. 에테르 탄도학 기초 자료요. 강도윤이 다시 침묵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언젠가 보여줄 수 있어요? 루아가 말했다. 완성되면요. 강도윤이 웃으며 말했다. 기다리겠습니다.
통화가 끝나고 루아는 다시 노트로 돌아갔다. 동굴형 항목이 비어 있었다. 다섯 유형 중 유일하게 기초 데이터가 없었다. 루아는 협회 게시판을 열었다. 동굴형 의뢰를 검색했다. 청주 외곽에 하나가 있었다. C급. CV-2 개체. 루아는 즉시 수락했다.
CV-2 자료를 찾아봤다. 동굴 천장 부착 개체. 체장 일 미터 오십. 마나 코어 복부 후방. 천장에 부착한 채 정지해 있다가 목표가 접근하면 낙하 공격을 시도한다. 낙하 속도 초속 이십 킬로미터. 낙하 직전 일 초 마나 충전 진동이 있다. 루아는 다이어그램을 그렸다.
천장에 붙은 CV-2. 루아가 서 있을 위치. 낙하 경로. 탄착 지점. 천장을 향해 쏘는 건 처음이었다. 고각이 가팔라질 것이었다. 육십 도에서 칠십 도 사이. 이 각도에서 목이 꺾이고 조준이 불안정해질 수 있었다. 루아는 자세 연습을 미리 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노트 정리를 마무리하면서 루아는 전체를 다시 훑었다. 처음 의뢰를 나갔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달라진 게 많았다. 쏘기 전에 생각하는 양이 달라졌다. 처음엔 위협을 확인하고 쏘는 게 전부였다. 지금은 개체 행동 상태 파악, 코어 위치 추정, 환경 변수 확인, 각도 계산을 거쳐 쏘는 것이었다.
이 과정이 처음엔 수십 초가 걸렸다. 지금은 몇 초로 줄었다. 계산이 체화되기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루아는 이 속도가 더 빨라져서 결국 총을 드는 순간 자동으로 계산이 돌아가는 수준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멀었다. 하지만 방향은 분명했다.
노트를 닫으며 루아는 마지막 메모를 썼다. 동굴형 완료 후 전체 데이터 교차 검증. 원칙 수정 필요 시 수정. 에테르 탄도학은 고정된 이론이 아니었다. 데이터가 쌓일수록 원칙이 수정되고 정교해졌다. 멈추는 순간 낡아지는 것이 이론이었다.
강도윤과 통화하고 며칠 후 루아는 협회에서 강도윤을 마주쳤다. 강도윤은 파티원들과 함께 의뢰 접수를 하고 있었다. 루아를 보자 손을 들었다. 파티원들이 루아를 봤다. 강도윤이 소개했다. 이쪽이 루아씨예요. C급 솔로 클리어 헌터. 파티원 중 한 명이 말했다. 혼자 하시는 분이에요?
루아가 말했다. 지금은 그렇습니다. 파티원이 말했다. 수입이 많이 적지 않으세요? 솔로는 보수가 낮은 의뢰 위주잖아요. 루아가 말했다. 지금은 수입보다 데이터가 더 중요합니다. 파티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강도윤이 루아 쪽을 보며 말했다. 그분 에테르 탄도학 연구 중이에요.
파티원들의 반응이 섞였다. 흥미로워하는 표정과 잘 이해 못 하는 표정이 반반이었다. 루아는 길게 설명할 생각이 없었다. 짧게 말했다. 나중에 완성되면 보여드리겠습니다. 그게 전부였다. 강도윤이 루아에게 나중에 한번 같이 밥 먹자고 했다. 루아는 끄덕이며 협회 안으로 들어갔다.
루아는 에테르 탄도학에 대해 다른 헌터들에게 설명하는 게 아직 어색했다. 완성된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완성되지 않은 이론을 설명하다 보면 빈틈이 드러났다. 빈틈이 드러나는 게 싫은 게 아니었다. 빈틈을 메우기 위해 시간을 내야 하는 게 부담이었다. 지금은 메우는 시간이었다. 설명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루아는 동굴형 게이트 전날 밤 노트에 마지막 예습을 했다. CV-2 천장 부착 낙하 패턴. 낙하 직전 일 초 진동. 마나 코어 복부 후방. 고각 육십오 도 예상. 루아는 자세 연습을 해봤다. 거울 앞에서 총구를 천장 방향으로 들었다. 목이 꺾였다. 연습이 됐다.
루아는 에테르 탄도학 원칙 정리를 마친 후 다음 단계를 생각했다. 기초 원칙이 세 가지 생겼다. 코어 이동 원칙, 사격 보정 우선순위, 실측 검증 원칙. 이 원칙들이 맞다면 어느 유형에서도 통했다. 맞지 않는다면 수정해야 했다. 원칙은 고정이 아니었다. 데이터로 끊임없이 검증해야 하는 살아있는 이론이었다.
강도윤과의 통화 이후 루아는 협력의 가능성에 대해 잠깐 생각했다. 혼자 하는 방식이 지금 맞았다. 데이터를 자유롭게 수집하고 원하는 게이트를 고를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 더 높은 등급 게이트를 가게 되면 혼자서는 한계가 있을 것이었다. B급 이상에서는 팀워크가 필요했다.
루아는 혼자 하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에테르 탄도학을 완성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혼자가 유리하면 혼자 하고, 팀이 유리하면 팀으로 가면 됐다. 목적에 따라 방법을 선택하는 것. 루아는 이 원칙이 에테르 탄도학 원칙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상황에 따라 보정하는 것.
노트에 미래 협력 항목을 만들었다. 장인 진현 — 탄종 개발. 강도윤 — 고등급 게이트 파티 가능성. 협회 직원 — 데이터 공유 채널. 아직 루아 혼자 각각의 관계를 맺어가는 단계였다. 조직이 아닌 개인 네트워크였다. 하지만 에테르 탄도학이 구체화될수록 이 네트워크가 커질 것이었다.
루아는 탄도 노트를 읽으면서 하루가 지났다. 창밖이 어두워졌다. 루아는 책상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했다. 오랫동안 앉아서 정리하다 보면 어깨가 굳었다. 루아는 어깨를 돌리며 내일 청주 게이트 준비물을 확인했다. 헤드라이트. 귀마개. 표준 관통탄. 노트. 준비 완료였다.
루아는 강도윤에게 짧은 문자를 보냈다. 기초 데이터 정리 거의 끝났습니다. 조만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도윤이 답장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루아는 문자를 읽으며 생각했다. 보여준다는 건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설명하려면 이론이 완결돼야 했다. 아직 아니었다. 하지만 가까워지고 있었다.
루아는 에테르 탄도학 노트에 한 문장을 추가했다. 이 이론이 완성됐을 때, 그것은 나만의 것이 아니어야 한다. 루아는 그렇게 쓰고 나서 잠깐 멈췄다. 군에서는 기술을 공유하는 게 전술이었다. 한 명이 알고 있는 것보다 팀 전체가 알고 있는 게 더 강했다. 에테르 탄도학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아는 것보다 헌터 전체가 활용할 수 있어야 진짜 의미가 생겼다.
그게 루아가 데이터를 기록하고 협회에 제출하는 이유였다. 자신만의 기술이 아니라 검증된 방법론을 만들고 싶었다. 언제까지나 비밀로 갖고 있는 게 아니라 결국 공개할 이론. 루아는 그 목표가 에테르 탄도학을 계속 만들어가는 힘이 됐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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