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스트라이커 제25화 — 할아버지 전화

스물다섯 번째 의뢰를 마치고 집에 들어온 날 저녁 전화가 왔다. 화면에 할아버지라고 떴다. 최영수. 아버지 쪽 할아버지였다. 루아는 잠깐 화면을 봤다. 할아버지가 먼저 전화를 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받았다. 루아야. 목소리가 낮고 조용했다. 루아가 말했다. 네,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말했다. 밥은 먹냐. 루아가 말했다. 잘 먹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잠깐 침묵했다가 말했다. 헌터 한다고 들었다. 루아가 말했다. 네.

할아버지가 말했다. 잘 다치지 말아라. 루아가 말했다. 조심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래. 잠깐이었다. 또 침묵이 왔다. 루아는 기다렸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네 아버지가 옛날에 CCT 지원했다가 포기하고 나온 거 알지. 루아가 말했다. 네.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때 네 아버지 눈빛이 지금 네 눈빛이랑 비슷했어. 루아는 무슨 말인지 알았지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잘 하고 있어. 그 말이 전부였다. 루아가 말했다. 네,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말했다. 끊어라.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루아는 화면이 꺼진 휴대폰을 잠깐 봤다. 할아버지는 원래 말이 적었다. 칭찬도 잘 하지 않았다. 잘 하고 있어. 루아는 그 세 음절을 머릿속에서 한 번 더 들었다.

책상으로 돌아와 노트를 폈다. 오늘 의뢰 데이터를 정리하는 손이 평소보다 느렸다. 루아는 손을 멈추고 노트를 덮었다. 오늘은 그냥 쉬기로 했다. 데이터는 내일 정리해도 됐다.

다음 날 루아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의뢰를 나가기 전에 탄도 노트를 펼쳤다. 어제 할아버지 전화가 머릿속에서 잠깐 지나갔다가 사라졌다. 루아는 오늘 의뢰를 확인했다. 부천 C급 게이트. FW-3 삼림형. 루아는 탄종 준비를 시작했다.

손이 익숙하게 움직였다. 표준 관통탄 열 발. 에테르 확산형 오 발. 예비 탄 포함. 이제 준비 과정이 루틴이 됐다. 처음 의뢰를 나갈 때는 무엇을 챙겨야 할지 생각하며 챙겼다. 지금은 생각하기 전에 손이 먼저 움직였다.

루아는 준비를 마치고 문을 나서면서 잠깐 뒤를 돌아봤다. 책상 위에 탄도 노트 두 권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벌써 두 권이었다. 루아는 다시 앞을 보고 나갔다.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부천 게이트는 도심 근처 소규모 삼림 지대였다. FW-3은 은신형 삼림 개체였다. 위장 능력이 있어서 시각으로 찾기 어려웠다. 루아는 마나 방사 진동을 소리로 탐지하는 방법을 썼다. 공기 진동이 약하게 왔다. 루아는 방향을 잡고 총구를 향했다. 나뭇잎이 흔들렸다. 루아는 흔들린 방향의 중심에 에테르 확산형 탄종을 쐈다.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마나 코어 교란. 루아는 즉각 관통탄으로 전환해서 관통했다.

이단 전술이 작동했다. 은신형 개체에도 유효했다. 루아는 보고서에 기록했다. 은신형 개체 이단 전술 적용 성공. 확산형으로 위치 노출 후 관통형으로 처리. 탄 소모 이 발. 루아는 이 데이터가 진현에게 좋은 피드백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 전화를 받고 사흘이 지났다. 루아는 그 전화를 다시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가끔씩 떠올랐다. 네 아버지 눈빛이 지금 네 눈빛이랑 비슷했어. 그 말이 무거웠다. 아버지가 못 넘은 것을 루아가 넘었다는 의미였다. 루아는 그게 자랑스러운 건지 무거운 건지 아직 판단하지 못했다.

아버지 최정연은 루아가 헌터 등록을 한다고 했을 때 말이 없었다. 전역 소식을 들었을 때도 말이 없었다. 가족 단톡방에 어머니가 루아의 첫 클리어 소식을 올렸을 때 아버지는 이모티콘 하나를 달지 않았다. 루아는 그게 반대인지 무관심인지 알 수 없었다.

루아는 아버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이해하려는 과정이 에너지를 썼다. 루아는 그 에너지를 의뢰에 쓰기로 했다. 아버지의 시선이 어디를 향해 있든 루아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데이터를 쌓고 에테르 탄도학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부천 의뢰 데이터를 정리하면서 루아는 은신형 개체에 대한 항목을 만들었다. FW-3 은신형. 에테르 확산형으로 위치를 노출시키고 관통형으로 마무리. 이단 전술이 은신형에도 적용됐다. 은신형은 볼 수 없어서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에테르 파동이 은신을 뚫었다. 마나 코어는 에테르 파동에 반응했다. 은신 외피가 막아도 코어의 반응은 막을 수 없었다.

루아는 이 원리를 노트에 추가했다. 은신형 개체 처리 원칙. 에테르 파동으로 코어 반응 유도 후 위치 노출. 노출 순간 표준 관통탄으로 처리. 이 원칙이 C급 은신형 전체에 적용될 수 있었다. B급 은신형은 어떨지 몰랐다. B급은 마나 방어막이 있었다. 방어막이 에테르 파동도 막을 수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루아는 B급 준비 체크리스트를 다시 봤다. 마나 방어막 관통 탄종. 미해결. 복수 사격자 탄도 계산 공유. 미해결. 은신형 B급 대응법. 미해결. 미해결 항목이 세 개였다. 루아는 이 항목들을 해결하려면 실제 B급 게이트 경험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C급에서는 이 질문에 답할 데이터가 나오지 않았다.

이강혁에게 문자를 보냈다. B급 게이트 동행 조건 있나요. 이강혁이 빠르게 답장했다. 없어요. 와주시면 됩니다. 루아는 잠깐 생각했다. C급 의뢰 오십 건을 아직 채우지 못했다. 하지만 미해결 항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B급을 경험해야 했다. 단, 의뢰 수락이 아닌 동행 옵저버 형식이면 협회 기록에 잡히지 않았다. 루아는 답장했다. 다음 의뢰 일정 알려주시면 가겠습니다.

할아버지 전화 이후 루아는 잠깐 가족에 대해 생각했다.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았다. 의뢰가 있고 데이터가 있고 탄종이 있었다. 가족 이야기는 그 바깥에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 목소리가 잠깐씩 떠올랐다. 잘 하고 있어. 그 말이 아직 귓가에 남아 있었다.

어머니 문자가 왔다. 밥은 먹고 있어? 루아는 먹고 있다고 답했다. 어머니가 다시 보냈다. 다치지 마. 루아는 알겠다고 했다. 짧은 교환이었다. 어머니는 늘 그랬다. 밥과 건강 두 가지였다. 루아는 그 두 가지가 사실은 하나라는 걸 알았다. 걱정이었다.

루아는 어머니에게 오늘 의뢰 결과를 보내지 않았다. 걱정을 늘릴 필요가 없었다. 클리어 여부보다 루아가 밥을 먹었는지가 어머니에게 더 중요한 것 같았다. 루아는 그게 이상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걱정하는 것이었다.

저녁에 탄도 노트를 정리하면서 루아는 한 가지를 생각했다. 에테르 탄도학이 완성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강도윤에게 보여줄 것이었다. 이강혁 파티에 적용할 것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협회 공개 자료로 등록할 것이었다. 루아 혼자 아는 기술이 아니라 헌터 전체가 쓸 수 있는 방법론이 되는 것. 그게 처음부터의 목표였다.

할아버지가 잘 하고 있다고 했다. 루아는 그 말의 의미를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계속 나아가면 언젠가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못 넘은 담. 루아는 그 담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그 답에 가까워지는 방법이라는 건 알았다.

다음 날 아침 루아는 B급 동행 준비를 시작했다. 탄종 점검. 총기 상태 확인. 에테르 탄도학 B급 개체 예비 자료 출력. 노트 여분 페이지 확인. 준비가 되면 긴장이 줄었다. 루아는 준비에서 안심을 찾는 편이었다. 군에서부터 그랬다. 준비할 수 있는 것을 다 준비하고 나면 나머지는 현장에 맡기는 것이었다.

B급 의뢰 전날 루아는 장비를 두 번 점검했다. 총기는 작업소에 있어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이강혁에게 연락했다. 총기가 에테르 작업 중입니다. 백업 총기로 가도 될까요. 이강혁이 말했다. 당연하죠. 총기 차이보다 사격자 차이가 크니까요. 루아는 백업 소총을 점검했다. C급에서 쓰던 표준 소총이었다. 성능은 충분했다.

진현에게도 연락했다. 내일 B급 게이트 처음 나갑니다. 혹시 B급 개체 대응에 추천 탄종 있으면 알려주세요. 진현이 답했다. 마나 방어막 있는 개체라면 에테르 집중 관통형이 효율적입니다. 재고가 있는지 확인해볼게요. 잠시 후 진현이 다시 연락했다. 집중 관통형 다섯 발 드릴 수 있어요. 내일 새벽 전에 받아가세요. 루아는 감사하다고 했다.

자정이 넘어서 진현 공방에 들렀다. 진현이 탄종을 건네며 말했다. B급은 C급이랑 달라요. 조심하세요. 루아가 말했다. 네. 진현이 말했다. 데이터 가지고 오세요. 나도 B급 개체 탄종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루아가 웃으며 말했다. 가져오겠습니다. 진현도 잠깐 웃었다. 공방 문이 닫혔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났다. 집합 장소까지 두 시간이었다. 루아는 탄종을 챙기고 노트를 챙겼다. B급 미해결 항목 페이지를 펼쳐봤다. 마나 방어막 코어 탐지. 파티 사격 조율. 은신형 B급 대응. 오늘 중 최소 하나는 데이터가 생길 것이었다. 루아는 노트를 가방에 넣었다. 문을 열고 나갔다. 밖이 어두웠다. 바람이 찼다. 루아는 첫 B급 게이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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