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스트라이커 제4화 — 야간 사격
두 번째 의뢰는 사흘 뒤에 들어왔다.
서울 동북부 외곽. 발생 72시간 경과 C급 게이트. 미클리어. 단독 진입 가능. 보수 420만 원. 이번엔 위험 수당이 더 붙었다.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야간 게이트였다.
게이트 위치가 군부대 인근 야산이었다. 주변 주민 피해를 막기 위해 협회가 야간 진입 금지 구역으로 묶어뒀다가 72시간이 지나면서 해제된 케이스였다. 낮에 진입하면 대낮에 야산에서 총기를 사용하는 그림이 나와서 파티 모집이 안 됐다.
루아는 의뢰를 수락하면서 협회 앱 메모란에 조건을 하나 달았다. 야간 조명 장비 지원 요청.
협회 측에서 20분 만에 답장이 왔다. 나이트 비전 고글 대여 가능. 지부 창고 방문 후 수령.
루아는 고개를 저었다. 나이트 비전 고글은 배율이 제한된다. 저격용 광학 장비가 아니었다.
필요 없다고 답했다.
루아는 군 시절 쓰던 야간 조준경을 개인 장비로 보관하고 있었다.
전역할 때 개인 불출 허가를 받은 물건이었다. 3세대 열화상 조준경. 주간 조준경과 교체 장착 방식. 배율 3~12배. 유효 탐지 거리 600미터. CCT 저격 임무에서 표준으로 쓰던 장비였다.
사용 연한이 8년이었다. 루아가 중사 시절부터 함께 한 조준경이었다. 분쟁 지역 파병 당시에도 이 조준경으로 탐지했다. 새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신뢰할 수 있었다. 루아는 새 장비보다 손에 익은 장비를 더 믿었다.
게이트 현장에 오후 9시에 도착했다.
야산 입구에 협회 직원이 한 명 있었다. 젊은 여자였다. 루아를 보더니 태블릿을 들었다.
최루아 헌터님. 현장 브리핑 먼저 드릴게요. 게이트 위치는 야산 정상에서 50미터 아래 경사면이고요, 진입로는 등산로 따라 올라가시면 됩니다. 약 800미터. 주변에 민가 없고, 군부대는 1.2킬로미터 거리라 총성은 괜찮습니다. 다만—
직원이 잠깐 말을 멈췄다.
야산이라 지형이 복잡해요. 나무가 많고, 경사가 20도 이상인 구간이 있어서 장거리 조준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루아는 총 케이스를 어깨에 들고 등산로로 걸었다.
직원이 뒤에서 외쳤다.
혹시 나이트 비전 다시 생각해 보시겠어요?
루아는 손을 한 번 흔들었다. 됩니다, 라는 뜻이었다.
등산로는 어두웠다.
하지만 달이 떠 있었다. 루아는 달의 위치를 확인했다. 동쪽 45도. 구름 없음. 달빛이 나뭇잎 사이로 내려오고 있었다. 핸드폰 손전등은 켜지 않았다. 빛은 루아의 위치를 알린다. 야간 임무에서 가장 먼저 끊어야 하는 것은 빛과 소리였다.
걸으면서 조준경을 주간용에서 열화상으로 교체했다. 마운트 잠금 나사를 손가락으로 조였다. 감촉만으로 체결 여부를 확인했다. 군 시절부터 반복한 동작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눈을 감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몸에 밴 루틴이었다.
400미터 지점에서 냄새가 났다.
C급 게이트 특유의 마나 냄새. 이번엔 달랐다. 지난번 광주 게이트는 썩은 구리 냄새였다. 이번엔 젖은 흙과 비슷한 냄새였다. 게이트마다 내부 생태계에 따라 마나 냄새가 달랐다. 루아는 냄새를 기억했다. 분류 기준이 됐다.
500미터 지점. 게이트가 보였다.
나무 사이로 보랏빛 빛이 새어 나왔다. 지름 5미터. 광주 게이트보다 컸다. 크기가 클수록 내부 개체 수가 많은 경향이 있었다. 보수가 더 높은 이유였다.
루아는 게이트 주변을 먼저 확인했다.
진입 전 현장 스캔 3분. CCT 표준 절차.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먼저 파악할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수집한다. 소리, 냄새, 진동, 빛의 변화.
게이트 안에서 소리가 났다.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무언가 이동하는 소리. 발소리 패턴이 복잡했다. 여러 개체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72시간 경과. 내부 개체들이 완전히 활성화된 상태.
루아는 진입했다.
내부는 광주 게이트와 달랐다.
지형이 숲이었다. 거대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었다. 실제 나무가 아니었다. 검은 수정으로 이루어진 나무 형태의 구조물이었다. 마나 결정체가 수목 형태로 성장한 것. 루아는 이런 형태를 헌터 자료에서 본 적 있었다. 수정림형 게이트. C급 중에서도 폐쇄 공간 전투가 주를 이루는 유형이었다.
장거리 저격이 어렵다는 직원의 말이 맞았다.
유효 시야 거리가 30미터 이내로 줄었다.
루아는 잠깐 멈춰서 계획을 수정했다.
장거리 저격이 안 된다면 중거리로 바꾼다. 20~40미터 사거리. 볼트 액션의 약점이 드러나는 구간이었다. 연사가 안 된다. 재장전마다 공백이 생긴다. 그 공백을 지형으로 메운다.
나무 사이 간격을 봤다. 약 2미터. 이동 경로로 쓰기에 충분했다. 루아는 나무를 등지고 이동하는 방식으로 전술을 재설계했다.
쐈다. 재장전. 나무 뒤로 이동. 다시 쐈다.
이것이 가능한 건 탄환이 믿을 수 있을 때였다. TYPE-01 기성품. 효율이 낮다는 게 변수였다.
첫 번째 개체를 확인한 건 진입 3분 후였다.
열화상 조준경 화면에 붉은 실루엣이 잡혔다.
체형이 달랐다. 광주 게이트의 갑각 마수가 아니었다. 이번 개체는 가늘고 길었다. 두 발로 서 있었다. 키 약 2미터. 팔이 무릎 아래까지 내려왔다. 손가락이 비정상적으로 길었다. 이동 방식이 특이했다. 걸을 때마다 발끝을 먼저 내딛고, 뒤꿈치를 나중에 내렸다. 소리를 죽이는 이동 방식이었다. 사냥 특화형 개체였다.
열화상 기준 마나 집중 부위는 흉골 중앙이었다.
루아는 거리를 계산했다. 28미터. 나무 두 그루 사이. 개체는 루아 방향을 등지고 있었다.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루아는 나무 뒤에서 총구를 내밀었다. 조준선을 흉골 중앙에 맞췄다.
방아쇠.
개체가 앞으로 쓰러졌다.
루아는 볼트를 당기면서 이미 옆 나무 쪽으로 이동했다. 2미터. 쓰러지는 소리에 반응한 다른 개체가 오는 방향이 오른쪽이었다. 루아는 왼쪽 나무를 등졌다.
두 번째 개체가 첫 번째 개체가 쓰러진 곳을 확인하고 있었다. 등을 보이는 순간이었다.
방아쇠.
두 번째.
이 방식으로 루아는 다섯 개체를 처리했다. 매번 사격 후 즉시 위치를 바꿨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이동하며 개체들이 반응하기 전에 다음 위치로 넘어갔다. 볼트 액션의 재장전 공백은 이동으로 상쇄됐다.
전투 시간 19분.
보스 개체는 수정림 중앙의 트인 공간에 있었다. 지름 15미터 정도의 빈 터. 이번 보스는 달랐다. 지면에 닿지 않고 1미터 높이를 유영하고 있었다. 몸 전체가 마나로 이루어진 반투명 개체. 코어는 중앙 흉부.
부유형 마나 개체. 물리 피해 감쇄율 높음.
루아는 기성품 탄환을 한 발 확인했다. 에테르 함량이 낮았다. 감쇄를 뚫을 수 있을지 불확실했다.
루아는 코어 위치를 봤다. 흉부 중앙. 반투명한 몸체 안에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정확한 지점을 노린다면 감쇄율을 우회할 수 있었다.
거리 35미터.
루아는 나무 뒤에서 엎드렸다. 낮은 각도에서 코어를 조준했다. 하단 각도에서 진입하면 몸체의 마나 밀도가 낮은 하부를 통과하며 코어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에테르 탄도학의 기본 원리였다. 마나 밀도가 낮은 구간을 찾아서 관통 경로를 설계한다.
방아쇠.
탄환이 보스 개체의 하부를 통과해 코어에 직격했다.
보스가 경련하며 공중에서 흔들렸다. 마나가 폭발적으로 방출됐다. 루아는 나무 뒤로 완전히 몸을 숨겼다. 마나 파동이 주변 수정 나무들을 타고 퍼졌다. 수정이 진동하며 금속 마찰음 비슷한 소리를 냈다.
잠시 후 조용해졌다.
루아는 고개를 내밀었다. 보스 개체가 지면에 내려앉아 있었다. 움직임 없음.
게이트가 수축하기 시작했다.
루아는 진입구를 향해 걸었다. 빠르게 걸었다. 뛰지는 않았다. 달리면 발소리가 커지고 장애물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수정림 사이를 걸을 때는 발이 수정 파편에 걸릴 수 있었다. 빠르게, 그러나 조용하게.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루아는 열화상 조준경을 주간용으로 교체했다. 어두웠지만 달빛이 있었다. 총을 케이스에 넣었다.
협회 앱에 클리어 보고를 입력했다. 소요 시간 38분. 처리 개체 수 6마리. 탄환 소비 6발.
산을 내려오는 길에 핸드폰이 울렸다.
강도윤이었다.
루아는 한 템포 뒤에 받았다.
클리어 기록 봤습니다. 야간 수정림형에서 6발. 소요 38분.
그렇습니다.
나이트 비전 없이 하셨어요?
열화상 조준경 있었습니다.
수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했다.
다음 의뢰 수락하기 전에 지부로 한 번 들러주실 수 있습니까.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필요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루아는 전화를 끊었다.
산길을 내려가며 하늘을 봤다. 달이 여전히 동쪽에 있었다. 위치가 아까보다 조금 이동했다.
38분이 지났다는 뜻이었다.
내려가는 내내 루아는 이번 전투를 복기했다. 볼트 액션으로 중거리 전투를 했을 때 발생한 효율 손실. 재장전 시 이동으로 보완했지만 시간이 더 걸렸다. 게이트 등급이 올라가면 개체 수가 늘어나고 이동 보완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반자동 소총 도입을 검토해야 할 시점이었다.
하지만 반자동은 저격 정밀도가 낮아진다. 볼트 액션의 정밀도를 유지하면서 연사가 가능한 방식. 루아는 이것을 탄환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TYPE-02 유도 비콘 탄과 연계하는 방식. 첫 번째 탄이 방향을 잡아주면 두 번째 탄이 유도되는 구조. 볼트 액션 한 발의 정밀도로 두 발의 효과를 낸다.
이론은 있었다. 실전 적용은 아직이었다.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에 탔다.
다음 게이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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