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스트라이커 제9화 — B급 게이트 (2)

용인 게이트 클리어 다음 날이었다. 루아는 오전 다섯 시에 눈이 떠졌다. 군대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이었다. 알람 없이도, 어떤 상황에서도 같은 시각에 깨어났다. 처음에는 불편하다고 생각했지만 헌터가 된 이후로는 쓸모 있었다. 이른 시간에 게이트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고, 새벽 훈련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조용했다. 오전 다섯 시의 서울은 조용했다. 루아는 조용한 걸 좋아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을 했다. 어깨 회전, 허리 풀기, 손목 운동. 순서는 항상 같았다. 저격수는 상체 유연성이 생명이었다. 경직된 상태에서 방아쇠를 당기면 탄도가 미세하게 틀어진다. 미세한 근육 경련 하나가 오차를 만들고, 오차는 빗나간 탄환이 된다. 루아는 그 미세한 차이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감으로만 알았다. 군에서 저격 훈련을 받으면서 수치로 확인했다. 탄도 오차 0.1밀리라디안의 차이가 오백 미터 거리에서 얼마나 벌어지는지.

샤워를 마치고 노트를 펼쳤다. 어제 게이트에서 확인한 것들을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개체의 마나 흐름 패턴, 보스의 코어 위치, 지형 굴절 계수, 기온과 습도에 따른 탄도 변화. 루아는 기억력이 남다른 편이었지만 기억을 신뢰하지 않았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변형된다. 감정이 섞이고, 인상이 왜곡된다. 중요한 순간이 과장되고, 사소한 순간이 지워진다. 하지만 기록은 그렇지 않다.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날짜는 변하지 않았다. 루아는 그래서 기록했다.

에테르 탄도학 노트는 이미 두 권째였다. 첫 번째 노트는 C급 헌터 시절에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관찰 메모였다. 탄환이 날아가는 동안 마나 농도가 높은 구역에서 경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마나 개체의 방어막이 어떤 층위로 구성되어 있는지. 처음에는 전부 가설이었다.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게이트에 갔다. 게이트에서 확인한 데이터로 다시 가설을 수정했다. 실패도 있었다. 탄환이 예측과 다른 방향으로 날아간 적도 있었다. 그 실패가 데이터가 됐고, 데이터가 쌓이면서 이론의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아직 완성은 아니었다. 하지만 방향은 맞았다.

오전 아홉 시, 협회 연수원 실내 사격장에 도착했다. B급 헌터들에게 개방된 시설이었지만 이 시간대는 거의 비어 있었다. 루아가 이 시간을 선호하는 이유였다. 사람이 없으면 집중이 가능했다. 옆 레인에서 총을 쏘는 소리가 없었고, 누군가 시선으로 보는 압박이 없었다. 총을 꺼내면서 생각이 시작됐다. 오늘 확인할 항목. 호흡 주기 조정. 트리거 압력 변화 분석. 마나 조정 탄도 성공률 측정.

레인을 배정받고 총을 꺼냈다. TYPE-01이었다. 진현이 개조한 저격소총. 무게 중심이 기존 양산형 모델과 달랐다. 처음 받았을 때는 손에 이질감이 있었다. 몇 시간을 잡고 있어도 어색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도 루아는 기다렸다. 총은 손에 맞춰가는 것이 아니라 손이 총에 맞춰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흘쯤 지나자 이질감이 사라졌다. 이제는 이 총이 아닌 다른 총이 오히려 어색했다. 손잡이의 질감, 방아쇠 저항감, 총신의 무게 배분. 모두 루아의 몸에 맞춰져 있었다.

오십 발을 쐈다. 첫 열 발은 기본 영점 확인이었다. 탄환이 어디 박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호흡 주기와 방아쇠 타이밍, 그리고 오늘의 컨디션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오늘은 손 상태가 좋았다. 어제 게이트 이후 충분히 쉬었다. 다음 스무 발은 거리별 착탄 분산 데이터였다. 오십 미터, 백 미터, 백오십 미터. 실내 사격장 최대 거리였다. 마지막 스무 발은 마나 조정을 가한 실전 상정 사격이었다. 탄환을 발사하는 순간 마나를 실어서 탄도를 의도적으로 조정하는 것. 성공률은 아직 칠십 퍼센트 언저리였다. 목표는 구십 퍼센트였다.

탄착군이 만족스러웠다. 오차 범위 안이었다. 루아는 탄피를 정리하고 노트에 오늘 날짜와 수치를 기록했다. 온도, 습도, 사격 자세, 호흡 주기, 방아쇠 압력, 탄착 좌표. 손 상태도 기록했다. 어제보다 유연성이 좋았다. 오른손 중지 관절이 어제는 약간 뻣뻣했는데 오늘은 정상이었다. 마나 조정 탄도 성공률은 어제보다 삼 퍼센트 높았다. 꾸준히 오르고 있었다.

사격 훈련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강도윤을 만났다. 협회 로비였다. 그는 서류 가방을 들고 루아 쪽으로 걷고 있었다. 목에는 협회 취재증이 걸려 있었다. 관리팀 소속이지만 루아를 만날 때는 항상 저널리스트 모드였다. 수첩을 들고, 메모할 준비가 돼 있었다. 루아와 눈이 마주치자 멈추지 않고 걸어왔다.

"어제 용인 게이트 클리어한 거 확인했어요." 강도윤이 말했다. "보고서 올라왔더라고요. 보스 단독 처리, 총 소모 탄수 여섯 발." 그가 수첩을 꺼냈다. "저격수가 B급 보스를 여섯 발에 잡은 게 얼마나 이례적인 건지 아세요?"

루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이 필요한 질문이 아니었다.

"기록하고 싶습니다." 강도윤이 말했다. "지금 하시는 방식을요. 에테르 탄도학이라고 하셨는데, 그 이론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전부 정리하고 싶어요. 헌터 저격수가 이런 방식으로 게이트를 클리어한다는 기록을. 지금 누군가 남겨두지 않으면 사라져버릴 테니까요."

루아는 그를 봤다. 강도윤은 진지했다. 기사 거리를 찾는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기록을 원하는 사람의 눈이었다. 루아는 그 차이를 알고 있었다. 정보를 원하는 사람과 기록을 원하는 사람은 말하는 방식이 달랐다.

"아직은 아닙니다." 루아가 말했다. "완성된 이론이 아니에요. 데이터가 더 필요하고, 재현 가능한 형태가 돼야 이론이라고 부를 수 있어요."

"완성될 때 알려주세요." 강도윤이 수첩을 닫았다. "기다리겠습니다."

루아는 대답 대신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걸어나갔다. 주차장에 도착해서 차 문을 열기 전에 잠깐 하늘을 올려다봤다. 맑은 날씨였다. 건조하고 바람이 없었다. 탄도에 유리한 조건이었다. 다음 게이트 의뢰가 앱에 들어와 있었다. 경기도 화성. B급 밀림형 게이트. 루아는 앱을 열어 승인 버튼을 눌렀다.

오후가 됐다. 루아는 사격장을 나온 뒤 인근 카페에 들어갔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창가에 앉았다. 에테르 탄도학 노트를 꺼냈다. 최근 두 게이트에서 확인한 데이터를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마나 농도와 탄도 굴절 사이의 관계식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변수가 너무 많았다. 개체의 종류, 게이트 내부 환경, 탄환의 초속, 사격 거리, 루아 자신의 마나 주입량. 이것들이 전부 독립변수였고, 탄착 위치가 종속변수였다. 다변수 방정식이었다. 루아는 수학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패턴을 읽는 능력이 있었다. 같은 환경에서 같은 조건으로 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직관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 직관을 수식으로 표현하는 게 문제였다.

노트에 새 페이지를 펼쳤다. 가설 목록을 적었다. 첫째, 마나 농도가 높은 구역에서는 탄도가 마나 밀도가 낮은 쪽으로 굴절된다. 둘째, 굴절 각도는 마나 농도 차이에 비례한다. 셋째, 루아가 탄환에 마나를 주입하면 그 주입량만큼 굴절 방향을 제어할 수 있다. 가설들은 맞아 보였다. 하지만 가설은 가설이었다. 데이터로 확인해야 했다.

커피를 마시며 계속 적었다. 게이트에서 관측한 데이터를 숫자로 변환하려고 했다. 마나 농도를 어떻게 수치화할 것인가. 루아는 아직 그 방법을 몰랐다. 마나를 측정하는 장비가 있었지만 그 장비를 들고 게이트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루아의 눈으로 읽는 것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눈으로 읽은 것을 수치로 변환하는 기준을 만드는 것. 그게 다음 과제였다.

한 시간쯤 지났다. 루아는 노트를 닫고 일어났다. 다음 게이트 의뢰 날짜가 이틀 뒤였다. 그전까지 준비할 것들이 있었다. 탄환 재고 확인, 장비 정비, 그리고 지형 데이터 검토. 루아는 카페를 나오면서 하늘을 봤다. 오후 두 시의 서울 하늘. 시야 확보에 좋은 날씨였다.

밤이 됐다. 루아는 집에 돌아와서 장비를 정비했다. TYPE-01을 분해하고 청소했다. 총신 내부를 닦았다. 개머리판의 나사 상태를 확인했다. 방아쇠 어셈블리의 유격을 점검했다. 한 시간이 걸렸다. 루아는 이 시간이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장비 정비는 훈련의 연장이었다. 총을 알아야 총을 쓸 수 있었다. 분해하고 조립하고 청소하는 과정에서 이 총의 구조를 몸으로 익혔다. 눈 감고도 조립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 총을 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정비를 마치고 에테르 탄도학 노트를 다시 펼쳤다. 오늘 훈련에서 확인한 것들을 추가했다. 마나 조정 탄도 성공률 칠십삼 퍼센트. 오차 범위 내 탄착 비율 구십이 퍼센트. 두 수치 모두 지난주보다 향상됐다. 루아는 그래프에 점을 찍었다. 꾸준히 오르고 있었다. 느리지만 방향은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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