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스트라이커 A급 레이드 이후
A급 레이드 성공 이후 루아의 협회 내 입지가 달라졌다. 이전에는 에테르 탄도학 개발자 또는 이종족 전담 팀 창설자로 알려져 있었다면, 레이드 이후에는 실전 전술가로서의 평가가 더해졌다.
박성호가 협회 전술 연구 분과에 루아를 추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정식 소속이 아닌 자문 형태였지만, 그것이 협회 상층부와 더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의미였다. 루아는 검토 후 수락하기로 했다.
레이드에 함께 참여했던 A급 헌터들 중 몇 명이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해왔다. 협력 의뢰 제안, 전술 교류 요청, 그리고 단순히 알고 지내고 싶다는 연락들이었다. 루아는 하나씩 응답하면서 A급 헌터 커뮤니티 안에서의 관계망이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
레이드에서 마주쳤던 A급 최상위 마수의 에테르 패턴이 자꾸 생각났다. 그 마수의 에테르 반응 방식은 일반 A급 마수와 달리 훨씬 복잡하고 다층적이었다. 루아는 그 패턴을 기록으로 남겼다. S급 마수는 어떤 패턴을 가질지가 자연스럽게 궁금해졌다.
에테르 직접 제어 훈련은 계속되고 있었다. 레이드 경험이 훈련 방향에 영향을 줬다. 단순히 에테르를 제어하는 것에서 나아가, 다른 존재의 에테르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익히는 훈련이 추가되었다. 서채연이 훈련 파트너로 자원했다.
서채연과의 에테르 상호작용 훈련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두 사람의 에테르 스타일이 달랐기 때문에 서로의 에테르를 방해하지 않고 협력하는 방법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 주의 훈련 끝에 두 사람은 에테르를 통해 간단한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루민은 두 사람의 훈련 결과를 듣고 그것이 드워프 전통 단조에서 두 장인이 함께 금속을 다룰 때 쓰는 공명 기법과 같다고 했다. 두 장인의 손이 같은 금속을 다룰 때 서로의 리듬을 맞추는 과정. 루아는 그 설명이 자신이 경험한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ETA-6 설계 초안을 그루민과 처음으로 공유했다. 에테르 압축 구조와 외부 에테르 인식 기능을 결합한 설계였다. 탄종이 사격 환경의 에테르 상태를 인식하고 그에 맞게 내부 압축 방향을 조정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루민은 도면을 보면서 한참 생각하다가 가능하다고 했다.
파티원들에게 ETA-6 방향을 소개했을 때 남궁태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달라고 했다. 루아는 잠깐 생각하다가 답했다. 탄종이 상황을 읽고 스스로 최적화된다고 보면 됩니다. 남궁태는 그러면 우리가 전술을 덜 짜도 된다는 뜻이냐고 물었다. 루아는 그것이 목표 중 하나라고 했다.
레이드 이후 한 달이 지나면서 루아는 자신이 A급 중에서도 점점 상위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직 S급과의 간격이 컸지만,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루아는 그 사실을 특별히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내일의 훈련이 지금 생각해야 할 것이었다.
A급 레이드 이후 협회 내에서 루아의 포지션이 변했다. 단순히 에테르 탄도학 개발자나 이종족 전담 팀 창설자가 아니라, 합동 레이드 지휘 능력이 있는 전술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루아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거부할 이유도 없었다.
박성호가 전술 연구 분과 자문 위원직을 제안했을 때 루아는 조건을 확인했다. 월 정기 회의 참석, 현장 경험 기반 전술 제언, 특수 레이드 자문 요청 시 우선 검토.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었다. 수락했다.
전술 연구 분과 첫 회의에서 루아는 기존 A급 레이드 전술의 한계점을 제시했다. 에테르 감지를 전적으로 개인 능력에 의존하는 방식은 감지 능력이 뛰어난 헌터에게 과부하를 준다는 것이었다. 루아가 경험한 에테르 공명 상태의 가능성을 설명하면서, 이것이 팀 레이드에서 구조화될 수 있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서채연과의 에테르 상호작용 훈련에서 새로운 발견이 있었다. 두 사람의 에테르가 특정 리듬에서 공명할 때 루아의 에테르 감지 범위가 서채연의 마법 회로를 통해 확장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루아가 혼자서는 감지하지 못했을 거리의 에테르 반응이 두 사람이 공명 상태일 때는 감지되었다.
이 발견을 레이드 전술에 응용할 수 있을지를 박성호와 논의했다. 에테르 감지 전문가와 마법 회로 운용자가 공명 상태를 이루어 팀 전체의 감지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방식이었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A급 레이드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뀔 수 있었다.
ETA-6 설계가 외부 루나이트 코팅 단계에서 첫 번째 시제품이 만들어졌다. 내부 격벽과 외부 코팅을 결합한 첫 시제품이었다. 루아가 손에 쥐었을 때 에테르 흡수 속도가 ETA-5보다 빨랐다. 외부 표면의 루나이트 코팅이 에테르 흡수 면적을 크게 늘렸기 때문이었다.
ETA-6 시제품으로 첫 번째 시험 사격을 진행했을 때 발사 직후 루아는 탄종 주변에서 에테르가 소용돌이치는 것을 손끝으로 느꼈다. 외부 코팅이 탄종 이동 중에도 계속 주변 에테르를 흡수하고 있었다. 이동하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이었다.
측정 결과는 루아와 그루민 모두를 놀라게 했다. 목표 직전에서 ETA-5보다 높은 관통력을 보였다. 탄종이 이동하면서 에테르를 추가로 흡수해 목표 충돌 시점에 에너지 밀도가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설계 목표를 넘어서는 결과였다.
강도윤은 이 현상을 가속 에테르 충전이라고 이름 붙였다. 탄종이 이동하는 동안 공간 에테르를 흡수해 가속되면서 충전량도 늘어나는 구조. 이것이 논문으로 발표된다면 탄도 물리학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것이라고 했다.
ETA-6 실전 투입 계획을 세웠다. 다음 제주도 레이드가 최적의 기회였다. 에테르 정류 구조물이 많은 게이트에서는 ETA-6의 에테르 흡수 효율이 극대화될 것이었다. 루아는 레이드를 전술 실전 장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ETA-6 첫 실전 검증의 장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그루민은 작업실에서 가끔 루아를 바라보면서 이런 말을 했다. 드워프 장인들은 손이 기억한다고 한다. 손이 기억하면 머리가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 루아는 그 말이 에테르 탄도학의 핵심을 가장 간결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손이 기억하는 것. 그것이 모든 훈련의 목적이었다.
강도윤이 새로운 연구 질문을 들고 루아를 찾아왔다. 에테르 공명 상태에서 루아의 탄도 정밀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측정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공명 상태와 비공명 상태에서 각각 동일한 표적을 사격했을 때의 차이를 비교하는 실험이었다. 루아는 동의했다.
실험 결과는 루아도 예상하지 못한 수준이었다. 공명 상태에서의 탄도 정밀도가 비공명 상태보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았다. 오차 범위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에테르 공명이 단순히 감지 능력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사격 정밀도 자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파티원들은 루아의 변화를 훈련에서 체감하기 시작했다. 윤성재가 루아와 합동 훈련을 하면서 루아의 사격 신호가 이전보다 훨씬 명확하게 읽힌다고 했다. 탄종이 날아가기 전에 루아의 에테르 흐름이 먼저 변하는 것 같다고 했다. 서채연은 그것이 에테르 공명 상태가 루아의 사격 준비 단계에서 이미 나타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모든 발전의 속도가 루아에게도 때로는 빠르게 느껴졌다. 하나를 완성하면 다음 단계가 이미 보였다. 그것이 좋으면서도 가끔은 잠깐 멈추고 싶을 때가 있었다. 지금 서 있는 자리를 온전히 느끼는 시간. 루아는 그런 날에는 총을 내려놓고 그루민의 작업실 옆에 그냥 앉아있곤 했다. 그루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S급을 향한 길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루아는 알았다. 하지만 그 길을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각 단계를 충분히 경험하고 소화해야 다음 단계가 더 단단해진다는 것을 루아는 이미 배웠다. ETA-1부터 ETA-6까지가 그 증거였다.
제주도 레이드가 끝나면 루아는 S급 심사 예비 자격 심사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었다. 그전에 해야 할 것들이 아직 있었다. ETA-6 실전 검증, 에테르 공명 상태 안정화, 그리고 파티원들과의 연계 전술 완성.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었다.
훈련 중 잠깐 쉬는 시간에 루아는 드워프 명예 협력자 메달을 꺼내 손바닥에 올렸다. 같은 방향을 보는 자. 그루민이 말해준 의미를 다시 떠올렸다. 루아는 그 방향이 점점 더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을 느꼈다. 흐릿하게 알고 있던 목표가 구체적인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에테르 탄도학이 공식 분야로 인정받은 이후 루아는 젊은 헌터들의 멘토 역할을 종종 요청받게 되었다. 모든 요청을 수락할 수는 없었지만, 월 한 번 협회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해 직접 피드백을 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에테르를 느끼는 것에서 시작하라는 것이 항상 첫 번째 조언이었다.
남궁태가 팀 회식 자리에서 루아에게 제안을 했다. 우리 이름을 더 알릴 의뢰 해보는 게 어때. 대형 의뢰 한 번. 루아는 잠깐 생각하다가 답했다. 이름은 알아서 알려질 거야. 지금은 실력이 먼저야. 남궁태는 반박하지 않았다. 루아의 말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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